
일본에서는 현재 8시간 풀타임이 아닌, 단 몇 시간만 일하는 초단기 아르바이트인 '스키마바이트(틈새 알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인구 절벽과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 5060 시니어 세대는 이제 은퇴 후 집에서 쉬는 존재가 아니라,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스스로 일자리를 찾고 사회적 활력을 유지하는 핵심 노동력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수익 창출을 넘어 건강 관리와 사회적 연결을 위해 다시 현장으로 나가는 일본 시니어들의 모습은 머지않아 한국이 마주할 미래를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의 아르바이트 시장은 최근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정해진 기간 동안 계약하고 일하는 일반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만 일하는 이른바 '스팟 워크(Spot Work)'가 대세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대표적인 서비스인 '타이미(Timee)'를 이용하면 면접이나 이력서 제출 없이도 스마트폰 클릭 몇 번으로 바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습니다.
"창고에 가서 피킹(물건 고르기) 같은 일을 해요. 여러 곳이 떠 있는데,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버튼을 눌러서 들어갑니다." (69세 시니어 구직자)
현장에서는 출근하자마자 앱으로 QR 코드를 찍어 근무를 인증하고, 일이 끝나면 즉시 일당을 정산받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기업에게는 바쁜 시간대에 즉각적인 인력을 보충할 기회를 제공하고, 개인에게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추가 수익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일자리에 60세 이상의 시니어 참여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25년 통계에 따르면 일본 내 스키마바이트 앱을 이용하는 60세 이상은 약 31만 명, 65세 이상도 11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단순히 돈이 필요해서만이 아니라, 은퇴 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선택입니다.
"수입 측면의 전제도 있지만, 사회와의 연결이라든지 일을 함으로써 얻는 건강 증진 같은 부분에 메리트를 느끼고 계십니다. 65세 정년퇴직 후에 취미 생활을 우선하면서도, 남는 틈새 시간에 일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스키마바이트 업체 관계자)
한 62세 여성은 과거 건강 문제로 2년간 누워 지냈으나, 스키마바이트를 통해 체력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서점 포장 업무 등을 하며 다시 활기를 찾았습니다.
"체력에 자신 없는 분들은 이런 틈새 알바가 좋다고 생각해요. 연금도 받고 있으니까 (알바비와) 합치면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죠. 단말기 조작이 서툰 분들도 있겠지만, 조금만 배워서 익숙해지면 정말 편하고 좋습니다." (62세 시니어 여성)
일본 기업들은 이제 단순히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고령자의 숙련된 경험'을 얻기 위해 시니어를 채용합니다. 특히 건설업이나 전문 기술직 분야에서는 수십 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가진 시니어들이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시니어 전문 인력 거점에서는 70세가 넘은 전문가들이 전국 각지의 중소기업으로 매칭되기도 합니다.
"대기업들은 아직 5060 세대 채용에 소극적이지만, 저희의 주 타겟인 중소기업들은 다릅니다. 10년 전만 해도 60대를 채용하는 곳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약 5,000~6,000개의 기업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시니어 인력 매칭 업체 관계자)
68세의 노구치 씨는 통신 회사에서의 경험을 살려 중소 기술 기업에 재취업했습니다. 젊은 층 구인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의 소통 능력과 업무의 맥락을 짚는 통찰력은 큰 자산이 됩니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말하지만, 무엇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해 봤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의 포인트가 무엇인지 알면 어떤 일이든 대응할 수 있어요. 물론 공부는 계속해야 하지만요." (68세 노구치 씨)
일부 선진적인 기업들은 고령 노동자의 임금을 깎지 않고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을 지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깨고, 철저하게 능력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입니다. 다국적 기업 '에이지(ag)' 일본 지사는 고령자의 임금을 삭감하지 않고도 매년 높은 성장을 기록하며 '일하기 좋은 기업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60세라고 해서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비용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결과로 이어지고 있고 회사가 매년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에이지 일본 지사장)
이곳에서는 '잡 포스팅 시스템(사내 공모 제도)'을 통해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역량만 있다면 승진이나 직무 전환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누가 몇 살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기회가 있는 회사죠. 시니어든 주니어든 자신의 스킬 세트만 있다면 커리어 업이 가능합니다." (59세 여성 매니저)
일본의 사례는 인구 절벽을 앞둔 한국에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고령 친화적인 일자리 환경을 만드는 것은 결국 여성, 장애인 등 모든 취약 계층에게도 친화적인 고용 시장을 만드는 일과 맞닿아 있습니다.
단순히 제도를 한꺼번에 바꾸기보다는,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노동 모델을 구축하고 시니어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에이지리스' 사회로의 점진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은퇴 없는 세대, 베이비부머의 숙련된 경험이 디지털 기술과 결합할 때 우리 사회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입니다.